돌아보면 모든것이 감사뿐인 시간들을 마무리 하며
특수교육학과 서효주 - 61704004
2017년 대구 사이버 대학교(이후, 대사대)에 새내기(?) 학생으로 입학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부산에서만 살다가 남편을 따라 낯선 인천에서 생활한지 1년이 지난뒤에 나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의 자폐성 행동들을 인지했고, 갓 태어난 막둥이의 몸조리가 끝나자마다 막내를 업고 아들을 데리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결국 대학 병원에서 장애 판정을 받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대로 무너질수 없었고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어 결국 내가 직접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찾기 시작했다.
세 아이를 케어 하면서 공부를 하는게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고 외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편입을 신청하는 과정이 복잡해서 그냥 1학년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차근차근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서울 경기권에도 사이버 대학들이 있었지만 남편이 이왕 할려면 대사대로 해 보라고 권유해서 고민하지 않고 대사대를 선택했다.
늘 온라인 수업으로만 공부를 하다가 서울 학습관에서 스터디를 한다는 소식에 신청을 해서 1시간을 넘게 대중교통을 이리저리 옮겨 타서 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좀 놀라기도 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선생님들 그리고 교수님 강의에 집중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2학년부턴 보육교사 자격증 때문에 대면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스터디 하러 한번 다녀 온 뒤로는 인천에서 서울 학습관까지 몇 번 가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스트레스가 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적같이 남편이 대구에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되어서 난 2학년부터 졸업하는 이 순간까지 대구에서 머물면서 남은 학업을 마무리 할수 있었다.
인천도 낯선 곳이었지만 대구 역시 나에게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대구에서의 4년의 시간 역시 나에게는 참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내 남편은 목사다.^^) 주말이 더 바빠서 나 대신 아이들을 케어해 줄수 없지만 같은 사택 윗층에 사는 사모님이 내가 공부하러 가야 되는 날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잘 돌봐 주셔서 맘 놓고 대면수업이나 스터디에 참석할수 있었고 무엇보다 거리적으로도 가까워져서 공부하는게 더 즐거웠던거 같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던 해에 학과장님으로부터 학과 임원제의를 받았는데 주말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로썬 임원 제의 마저도 받아들이는게 사실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주말을 방해 받지 않는 선에서 학과 임원일을 시작을 했고 그때부터 학교 행사와 학과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다른 임원 선생님들과 교수님들까지 더 깊이 사귈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아내로써 엄마로써의 삶만 살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아내, 엄마가 아닌 나 서효주의 삶을 또 그렇게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의 장애에 늘 막연했던 나는 특수교육학을 배우면서 발달 장애뿐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생각과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배울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하면서 내 아들과 같은 병이지만 아이의 성격 특성에 따라 또 다른 발달 장애 아동들을 이리 저리 접하게 되면서 발달장애에 대해서도 더 다양하게 보게 되는 경험들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배움의 힘인지 그동안은 무지했고 때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어쩔땐 알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과 새로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궁금증을 조금은 해결해 드릴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대면 행사와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서 소통을 어찌 해야 되나 고민 하던중에 과대표님과 의논해서 특교과 오픈방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통하면서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각자의 삶을 응원해 주는 애정 가득한 특교과 쌤들도 많이 만났다.
참 재미 있는건 공부를 그렇게 즐기는 것도 아니고 쉬운 공부도 아니지만 공부를 하면서 자꾸 욕심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원래는 특수교육만 하고 끝낼려고 했는데 어느새 졸업을 1년 연장하고 사회복지학과도 복수 전공을 하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 중에서도 복수전공을 선택하신 분들도 꽤 많이 계신다.
사실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거나 복수선택을 2학년부터 시작했다면 난 아마 다른과도 하나 더 복수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도 좀 더 공부를 더 해 볼까 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일단 이제는 현장에서 장애인들을 더 접하고 경험하고 싶은 맘이 들어서 졸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학교를 떠다는건 너무 아쉽지만 이제는 이 곳에서 배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때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계속 기도했던 소원이 있었다.
비록 우리 가정에 아픈 손가락을 주셨지만 이 아들을 통해서 나와 내 남편이 그리고 우리 가정이 섬기게 될 교회와 여러곳에서 만나게 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나의 배움이 꼭 쓰임 받을수 있는 날이 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이제 졸업을 앞둔 이 시점에 우리 가정은 또 대구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길이 열렸다.
또 다른 낯선 땅으로 가야 되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난 또 확신한다.
그곳에선 이제 나의 배움이 여러 모양으로 사용될수 있을거란 확신이 말이다!!
얼마전에 남편에게 그런말을 한적이 있다.
'여보 아마 하나님이 나랑 아이들 때문에 대구에 잠시 머물게 하신거 같아 대구에 있어서 내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인데도 충분히 공부를 마칠수 있었으니까!' 라고 말이다.
정말 그랬다. 다른 지역에 있었으면 내가 공부를 마무리 할수 있었을까 싶다.
하고 많은 사역지에 전혀 연고도 없는 대구에 온게 된 건 정말 나 개인적으로는 기적이었고 은혜였다.
그리고 4년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대사대를 통해 배우고 경험하고 만난 모든 사람들 마저 나에게는 감사의 제목들이었다.
내 평생에 정말 잊지 못할 추억과 감사의 제목들이 가득했던 대구사이버대학교!!! 그리고 사랑 많고 늘 아낌없이 격려해주시고 힘을 주셨던 우리 특수교육학과 교수님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하면서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던 사랑하는 우리 특교과 선생님들!!
모두가 너무 은혜였고 사랑이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