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공부를 못하는 아이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유미교수
“저의 딸은 새벽까지 공부하는데도 성적은 점점 내려가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는 부부가 시간이 나는 대로 서로 돌아가며 아이를 맡아 공부를 시켰어요. 제법 잘 따라오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정이 달라졌어요. 남편이나 저나 중학교 수준이 버거웠고 이제는 제가 알아서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스스로 하도록 두었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얼굴도 어둡고 짜증도 늘었고, 최근에는 선생님으로부터 전에 듣지 않던 야단도 맞고, 암튼 새벽까지 책상 앞에서 죽어라 공부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 부모로서 걱정도 되기도 하고, 애한테 들인 공을 생각하니 화도 나고, 짜증도 납니다.”
지인의 소개로 필자의 연구실을 찾아온 고1 딸을 둔 엄마의 얘기다. 며칠 전에는 “그래 가지고 네가 뭐가 되겠니? 계속 이런 식으로 할 거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워라. 나도 더 이상 너 땜에 고생 안 하고 잠이나 편히 자야겠다”고 퍼부어 댔더니 한번도 대들지 않던 아이가 “나라고 공부 못하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잘하고 싶다고. 만날 만날 잔소리. 지긋지긋해 죽겠어. 내가 알아서 하게끔 놔두면 안돼?”라며 아주 무섭게 돌변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자신이 아이에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이제부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봐라”고 말했다 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엄마의 얼굴 전체가 경직되어 있었고, 두 손은 안절부절못해 부비고 있었으며,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아이의 공부가 엄마 자신의 인생 전부인 듯 매우 심각했다. 이쯤 되면 모녀간의 평상시 모습이 그려진다. 딸을 들볶고 간섭하고 미워하는 모습 말이다.
이러한 엄마의 태도는 백발백중 아이의 마음을 교란케 하고 반항의식을 가지게 하고, 모녀관계를 타협하기 어려운 대립관계로 치닫게 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아이는 절대 공부를 잘할 수 없다. 아이의 에너지가 공부에 집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우선적으로 엄마의 걱정과 근심, 간섭과 미움을 처리하는 데 오롯이 쓰인다. 엄마의 불안과 조바심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엄마의 일상적인 습관이며 이런 습관을 가진 엄마 품에서 자란 아이는 이미 엄마와 똑같은 습관이 내면화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가 자기에게 했듯이, 스스로를 똑같이 걱정하고 근심하고 간섭하고 미워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에너지 총량 중 대부분을 불필요한 곳에 쓰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에너지 소모량은 정신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은 에너지 소모량이 적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에너지 소모량이 많다. 근심, 걱정 등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에너지 소비량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이유는 걱정 그 자체가 마음과 몸을 긴장시키고, 신진대사기관을 너무 빨리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량이 배 이상으로 늘어나면 늘어난 만큼 남아있는 에너지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쉽게 피곤해지고 걸핏하면 짜증내거나 화를 내며 그래서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데 쓸 에너지가 남아있을 리가 없다.
엄마가 가지는 아이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큰 결과를 초래한다. 아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소망을 이루고 싶다면 엄마는 무엇보다 아이를 믿고 인정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아이가 공부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 자신의 내면화된 걱정과 근심 등을 사랑과 인정으로 재내면화하기 위한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상술하기로 한다.
출처: 영남일보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51224.01021075839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