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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코너는 학생 여러분의 기쁨이나 경사스러운 일, 또는 좋은 글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학교에 대한 질의사항이나 건의사항은 HeIp Desk(종합민원실)의 "묻고 답하기"코너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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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성태 (hcleest@hanmail.net) ( 2011.04.24 01:40:04, Read:735, Memo:0 ) 
    제목   운명론&섭리
    이 지구상에는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듯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도 다양하다.
    즉 대통령, 지게군, 농사군, 공무원, 연예인, 등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자리는 육체의 생명을 연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 즉 가치관 색깔론이 분명해야 한다. 이 색깔론이 자신을 자신되게 건강한 정신적 삶의 버팀목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색깔론을 정리해 보면 
    1, 자신의 삶의 자리를 아무런 생각 없이 단순 의식주만을 위한 충실한 회색 색깔론이다.
    2, 인본주의 철학에 의한 색깔론이다.
    3, 신본주의 신학에 의한 색깔론이라 하겠다.
    즉 수많은 인류와 다양한 삶의 자리가 있어 보이는 듯 하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은 세 가지 색깔론 뿐이다. 여기에 신학도 큰 범주는 철학이다. 세분화하여 정의한다면 신본주의 신학이라 한다.

    2번 인본주의는 고대사로부터 신본주의 사상에 지배를 받다가 중세기 스콜라주의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을 되살리려 르네상스 문예 부흥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인간중심주의 이론으로 파생되었고 여기서 또한 엄청난 00주의, 00주의 이론으로, 다양한 철학이 파급이 되었다. 

    우리나라 동학사상에서도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주장을 한다.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호킹박사가 이 우주는 창조된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의 의해서 관리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밀하고 세밀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 운행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 과학자는 신이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이다고 주장을 했다. 
    이처럼 인본주의에서 파생된 모든 이론과 철학은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신의 존재를 거부 하는 무신론의 인본주의 철학이고 이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얼마 전에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한국의 권위 있는 목사님이 일본의 우상숭배와 성적타락의 죄 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로 언급을 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1, 난 이 글에서 그 분의 가치관, 철학, 신본주의 신학에서의 색깔론이 분명치 않았음을   
        나의 생각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2, 그리고 운명론& 섭리를(나의 글 “할머니의 넋두리”란 글에서 언급)함께 밝히고자 한다. 

    섭리와 운명론 국어사전을 보면 
    섭리: 세계와 인간의 운명은 신이 예정했던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신앙(信仰). 섭리는 18세기에 유럽 계몽사상의 입장에서부터 논란이 되어 왔는데 칸트나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이 사고방식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 섭리를 옹호한 논작(論作)으로 유명한 것은 라이프니츠의 『변신론』(辯神論, Théodicée, 1710)이 있다.
    운명론: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이다.

    철학에는 인과응보, 또는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뜻이고, 좋은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은 징계를 받는다는 이론이다. 

    위에 목사님이 언급한 말씀은 일본이 저주를 받은 것에 대한 결과는 인과응보론에 의한 죄값이다. 라는 이론인 것이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본주의 철학 인과응보론에 가두어 놓은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본주의 신학 색깔은 하나님존재를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사고의 틀에 가두어놓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도 죄에 대한 결과는 진노가 반드시 있다. 그렇다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쉽게 그렇게 표현을 해서 상대에게 상처내지는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성경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색깔론이 분명치 않아 혼선을 빚었던 기록이 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자가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맹인의 동네를 지나가시다가 맹인을 보게 되자 제자들이 물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값입니까? 부모죄값입니까? 자신의 죄값입니까?
    인본주의 철학에 의한 인과응보론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신본주의 색깔론에 의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주고 있다. 
    9장3절에 보면 이 사람 맹인 자신의 죄값이나 부모의 죄값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맹인의 부모님 성함을 갑돌이 갑순이라고 칭하겠다. 부모님은 맹인인 자식 때문에 자식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한평생을 고통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팔자인 것이다. 자식은 자신의 의도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맹인으로 태어나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어째든 자식은 맹인으로서 한평생이 비참한 삶의 자리가 된 것이다. 

    남모르는 고통을 안고 숨소리조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아가는 갑돌이 갑순이에게 철학은 인과응보론으로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가슴에 못을 박는다. 부모의 죄값이다. 라는 말에 심장이 뒤틀리며 불난 집에 부채질이냐 하며 따귀라도 때리고 싶지만 죄인 된 심정이라, 못 박히는 고통을 고스란히 한(恨)으로 담아놓고 살아가야 하는 심정이다. 
    그런데 자식의 죄값이다. 라고 하는 말에는 갑돌이도 갑순이도 참을 수가 없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데 그 애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식의 죄값이라 하느냐! 몇 살을 잡고 이마를 박치기라도 하면서 자식의 처지를 옹호해 주고 싶지만 부끄러운 죄인 된 부모의 심정이라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때 철학이 그런 갑돌이와 갑순이에게 결론을 내린다. 자식이 생전에는 죄는 안 지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생에서 많은 죄를 지었기에 죄값으로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다. 라고 언급을 한다. 해명할 답이 없는 갑돌이 갑순이 더 살아갈 맛이 없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상황에 또 다른 철학은 죄책감과 고통가운데 사는 갑돌이와 갑순이 보기가 안타까워 위로하고자 하는 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라. 그걸 움켜잡고 고통가운데 산다고 눈이 떠여지느냐다. 맹인에게 주어진 삶(운명론)이다. 단지 맹인에게 필요한 것을 부모로서 최대한으로 도와주고 맹인에게 주어진 삶을 통하여 자신이 즐거워한다면 그것으로 자식도 너의 내외도 함께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라. 그게 답이다. 라는 것이다. 

    이 말에 눈이 팍 떠이면서 닫힌 마음이 열려지고, 정신이 번쩍 들고. 이제 살맛이 나고 용기를 얻는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 해 주고, 공감을 주고, 명쾌한 답을 주는 인본주의 철학에 껌뻑하며 감동적인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도 뚜렷한 답도 없고 한평생을 고통가운데 사는 것 보다 위로를 얻고자 한다. 즉 맹인인 자식을 향해 속으로 하는 넋두리의 말, 그래 부모가 너를 맹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겠나, 부모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인데 우리의 힘, 인력으로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니었더냐! 그게 너의 운명이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맹인으로 살아라. 살다보면 살아갈 방법이 다 있고 굶어 죽는 법은 없다. 이것이 인본주의 철학에 의한 맹인도 갑돌이 갑순이도 운명론으로 수용을 하고 나름의 힘과 위로를 얻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나름의 결론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운명론적인 이론으로 인간의 희망을 포기하면서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는 절망적이고 해답이 없는 허무주의 철학의 삶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
    아주 먼 옛날부터 즉 갑돌이 갑순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느 때가 되면 갑돌이 갑순이가 태어 날 것이고 이들이 어느 때가 되면 결혼하게 될 것이고 이들에게서 자녀들이 태어날 것이고 그 중에서 맹인 하나가  태어나게 해야지! 그래서 이 맹인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야지,” 하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갑돌이 갑순이 본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신의 의한 주권과 계획과 섭리로 말이다. 만일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이런 섭리를 알았다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로 통탄을 하면서 울부짖으며 대발 노발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이런 심술궂은 계획으로 하나님 자신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느냐? 당신이 진짜 사랑의 하나님이 맞느냐? 다른 좋은 계획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인데, 왜 하필 우리 가정을 맹인으로 하여금 풍지박산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우리 가정에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주느냐다. 
    아이고! 이런 원통하고 절통하고 난리통으로 있는 화를 동원하며 펄펄뛰지 않겠는가? 

    계속해서 하나님은 갑돌이와 갑순이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하나님 자신의 일을 하고자 하는 시간의 때가 되었던 것이다. 섭리대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맹인이 사는 동네로 가게 하시고 만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인과응보론의 토론이 벌어졌다. 이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시며 계속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9장4절 나를 보내신 이(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한다. 5절 내가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하신다. 
    아주 중요한 말이다. 
    즉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가 나를 세상에 빛으로 보낸 것인데 빛에 대한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을 볼 수 없었던 맹인에게 눈을 뜨게 해서 빛을 보게 하신 것이다. 32절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절 이 사람(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라고 한다.

    이 말은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느 시대에도 예수님을 대적하고 부인하는 자가 있는 것을 아셨다. 이 사건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했다. 즉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불쾌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죄목은 신의 대한 불경건죄로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맹인을 통하여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을 통하여 눈을 뜨게 하는 능력을 나타내므로 신적인 존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자 했던 것이다. 이때에 33절 “이 사람(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예수님으로 하여 맹인이 눈을 떠는 것을 보고 더러는 시인, 인정을 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믿는 무리가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계속 부인을 하며 죽이려고 모략만 찾고 있는 기득권층이 있었다. 마치 나의 글 “할머니의 넋두리” 글에서처럼 봄나물을 통하여 부활의 소망을 보여 주는데도 깨닫지 못하듯이 계속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는 기득권층들이다.  

    또 다른 의미는 나의 글 “할머니의 넋두리”에 보면 1,인간의 본성이란? 부분에 계시를 보면 인간은 처음부터 악하게 태어나 구제 불능의 존재로 스스로 선해 질 수가 없다는 계시의 말이 있다. 즉 구제불능인 맹인이 예수님을 통하여 빛을 보았듯이 구제불능 죄인인 인간들을 예수님의 빛으로 선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빛이란 예수를 믿어서 선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의미의 빛이다.  

    이런 의미를 담고 갑돌이 갑순이 자신들도 모르는 하나님 자신의 주권으로 그 가정에 맹인을 두셨고, 이 맹인을 통하여 갑돌이와 갑순이의 가정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때가 되어서 자식인 맹인에게 빛을 주었고, 구제불능의 죄인인 인간들을 선한 사람으로 이끌 수 있는 생명의 빛을 주고자 하셨고, 오고가는 세월 속에 예수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을 시키고자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자로 예수님을 통하여 빛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섭리였던 것이다.

    결론으로
    맹인의 가정으로 인한 토론은 인본주의 철학으로 보면 운명론이였지만 신본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일본의 대지진도 인과응보론의 이론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그 어떤 섭리를 담고 있는 사건의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의 권위 있는 목사님이 예수님 제자들처럼 일본을 향해서 인과응보론의 이론으로 하나님의 진노라고 한다는 것은 신본주의 신학의 색깔론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의 엑시터 대학의 성서학자 프란체스카 스타브라코풀루 교수도 하나님은 아내가 있었다. 고 주장했다. 성서학자라고 하지만 분명한 자신의 색깔론에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라도 혼돈을 주는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글을 읽고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신본주의 색깔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이런 저런 철학도 있구나 하며 함께 공유하며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참고적인 글로 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름의 자신들의 가치관 철학의 색깔론을 분명케 하여 건강한 삶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인내에 감사합니다. 
    합천읍 내곡리 내곡교회 이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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